|
|
|
|
|
 |
영국과 미국 관료제 수립 과정의 비교
영국의 관료제는 국가 형성과 함께 점진적으로 전문화되었고, 정당정치의 확대 속에서도 정치적 중립성과 직업공무원제 의 원리가 제도적으로 지켜졌다.
따라서 미국 행정조직은 영국처럼 완전한 의미의 정치적 중립 고급 관료제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영국은 관료제가 국가발전을 이끄는 제도적 토대가 되었고, 미국은 정치와 행정의 긴장 속에서 관료제가 재구성되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영국과 미국의 관료제 수립 과정은 오늘날 행정제도를 이해하는 데 여러 시사점을 준다.
영국의 관료제와 미국의 관료제는 모두 현대 행정국가의 핵심 제도로 발전했지만, 그 수립 과정은 매우 달랐다.
결국 영국과 미국의 관료제 수립 과정을 비교하면, 관료제는 단순한 행정기술이 아니라 각국의 정치제도와 역사적 조건에 의해 형성되는 제도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영국은 국가 중심의 점진적 개혁을 통해 중립적 직업관료제를 만들었고, 미국은 정당정치의 산물인 엽관제를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실적주의 관료제를 발전시켰다.
|
|
|
 |
영국 관료제의 수립 과정
영국과 미국 관료제 수립 과정의 비교
이 과제에서는 먼저 관료제의 의미와 비교 기준을 간단히 정리한 뒤, 영국 관료제의 수립 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이어서 미국 관료제의 수립 과정을 엽관제의 전개와 개혁의 맥락 속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그 다음 두 나라의 수립 과정을 임용원리, 정치와 행정의 관계, 국가구조, 개혁방식, 발전 경로라는 쟁점별로 비교하여 설명할 것이다.
의회 내각제를 택한 영국과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은 정치권력과 행정조직의 관계를 설계하는 방식부터 달랐다.
또 동인도 회사는 1806년 동인도 회사대학을 세워 전문 행정인력을 양성하려고 했지만, 현대적 영국 관료제의 직접적 선구는 19세기 중반 노스코트트레벨리 언 보고서의 권고가 실제로 이행된 뒤에 형성되었다고 설명된다.
이 보고서는 당시 공직임용에서 작동하던 후견주의와 비효율을 비판하고, 공무원을 공개 경쟁시험에 의해 선발하며, 일상적 업무를 담당하는 직군과 정책 결정과 고등행정을 담당하는 직군을 구분할 것을 권고하였다.
또한 영국공무원위원회는 이 보고서가 현대 영국공 무원제도의 전구체였으며, 이후 공무원위원회가 설치되어 그 권고들이 점차 실현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보고서 이후 1855년 공무원위원회가 설치되었고, 영국 공무원 제도는 임용의 공정성과 공개성을 제도적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공무원위원회의 2014년 연차보고서는 2015년 이 첫 공무원위원 임명 160주년이라고 밝히면서, 1854년 보고서 이후 1855년부터 능력에 의한 임용원칙이 영국 헌정질서의 중심 원리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한다.
영국 공무원위원회의 역사설명에 따르면 노스코트 트레벨리언 체제는 약한 세기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변화한 사회와 기술, 복잡해 진 행정수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
영국의 관료제는 국가 형성과 함께 점진적으로 전문화되었고, 정당정치의 확대 속에서도 정치적 중립성과 직업공무원제 의 원리가 제도적으로 지켜졌다.
영국이 비교적 일찍 국가 내부 개혁을 통해 후견주의를 정리했다면, 미국은 민주정치의 확대 속에서 엽관제가 먼저 제도화되었고 그 문제가 누적된 뒤에야 개혁이 가능했다.
다시 말해 미국 관료제는 처음부터 정치적 중립성과 직업성 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정당정치의 강한 영향 아래 형성된 행정체제를 나중에 실적주의 방향으로 교정하면 서 발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 관료제의 수립은 실적주의의 확립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책임성과 민주적 통제의 문제를 함께 안고 있는 발전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평등고용 기회 위원회에 게시된 1978년 공무원 개혁법 전문은 이 법이 미국의 공무원법 전체를 개혁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미국 관료제 운영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공무원위원회의 기능 을 재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미국 관료제가 1883년 펜들턴 법으로 실적주의의 출발점을 마련한 뒤, 20세기 후반에 다시 성과와 책임성을 강조하는 현대적 행정체제로 재구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결국 미국 관료제의 수립 과정은 민주적 정당정치의 산물인 엽관제에서 출발하여, 그 폐해를 줄이기 위한 실적주의 개혁을 거쳐, 다시 현대행정국가의 요구에 맞춰 성과와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온 과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영국처럼 처음부터 정치적 중립성과 직업성이 강한 관료제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정치성과 전문성을 끊임없이 조정하면서 성장한 점이 미국 관료제 형성의 특징이다.
다시 말해 영국은 후견주의에서 실적주의로의 이행 이 비교적 빠르고 국가 주도적이었고, 미국은 엽관제가 장기간 제도화된 뒤 그 폐해를 교정하는 방식으로 실적주의가 도입되었다.
따라서 영국 관료제가 정치로부터 의상대적 독립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면, 미국 관료제는 정치적 책임성과 직업적 전문성을 절충하는 방향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차이는 국가구조와 행정수요의 관계이다.
미국도 결국은 실적주의를 받아들였지만, 그 과정은 영국처럼 행정개혁의 내적 논리보다 정치개혁의 압력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러나 영국은 후견주의를 비교적 일찍 극복하고 정치적 중립성과 공개경쟁시험을 중심으로 직업관료제를 형성한 반면, 미국은 민주정당 정치의 확대 속에서 엽관제를 경험한 뒤, 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점진적으로 실적주의 관료제를 발전시켰다.
다시 말해 영국은 관료제가 국가발전을 이끄는 제도적 토대가 되었고, 미국은 정치와 행정의 긴장 속에서 관료제가 재구성되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영국의 공무원 제도가 정치적 중립성과 직업성을 강하게 강조하는 것은 의회 내각제와 정권교체의 연속성 속에서 발전했기 때문이며, 미국의 공무원제가 정치적 임명직과 실적주의 공무원이 혼합된 형태를 띠는 것은 대통령제와 정당정치의 특성 때문이다. |
 |
관료제, 미국, 영국, 정치, 공무원, 행정, 주의, 되어다, 실적, 제도, 개혁, 국가, 형성, 공직, 위원회, 이후, 성, 직업, 엽관제, 정당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