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남미 시와 옥따비오 빠스 정경원
 
 시인의 운명
 
 단어들 그래, 바람의 단어들,
 바람 속으로 사라져버렸구나.
 나를 단어들 속으로 사라지게 해주소서,
 나를 입술 사이의 바람되게 해주소서,
 윤곽없이 헤매는 단 한번의 입김
 바람을 잠재운다.
 
 빛 또한 제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Condicion de nube, 1944)
 
 야수(夜水)
 
 밤이면 떨어대는 두 눈을 가진 말이 있는 밤이,
 잠든 들녘에 물의 눈을 가진 밤이,
 떠는 말의 눈을 가진 네 눈에 있고,
 비밀스런 물의 눈을 가진 네 눈에 있다.
 
 어두운 물의 눈,
 연못 물의 눈,
 꿈결 물의 눈,
 
 침묵과 고독,
 달에 인도되는 어린 두 마리 짐승,
 그 눈에서 마시고,
 그 물에서 마신다.
 
 네가 눈을 뜨면,
 밤은 이끼낀 문들로 열리고,
 밤의 복판에서는
 물로 비밀스런 왕국이 열린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달콤하고 잔잔한 강의 흐름은
 안으로 너를 빠뜨리며 어둡게 한다:
 밤은 네 영혼의 해변을 적신다.
 (El girasol, 1943-1948)
 
 다리(橋)
 
 지금과 지금 사이에,
 지금의 나와 지금의 너 사이에,
 다리라는 두 글자.
 
 네가 글자로 들어갈 때,
 너는 자신 속으로 들어간다:
 하나의 반지되어
 세상은 닫힌다.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언제나 몸은 펼쳐지고,
 하나의 무지개된다.
 
 나 그 아치 아래에서 잠을 청하리라.
 (Salamandra, 1958-1961)
 
 내 안의 나무
 
 내 이마에 자란 한 그루 나무,
 내 안으로 자랐다.
 뿌리는 혈관,
 신경은 가지,
 어수선한 나뭇잎은 사유.
 
 너의 시선은 나무를 불 붙이고
 어둠의 열매는
 피의 오렌지
 불씨의 석류.
 
 동이 튼다
 몸둥아리의 밤으로부터.
 먼 저 속에서, 나의 이마에서,
 나무가 말한다.
 가까이 오너라, 들리느냐
 (Arbol adentro, 1976-1988)
 
 Ⅰ. 중남미 시
 
 1. 원주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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