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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 위안부 분쟁에 관하여

〚“억울한韓 • 뻔뻔한 日” - 위안부 이야기〛

(1) 개요

과제를 하기 전까지는 위안부라는 것이 있고 일본 측의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없어 계속해서 집회를 하고 있다고 단순히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할머니들께서 힘든 몸을 이끌고 무얼 바라고 일본 측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던 중 저를 격분하게 만든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황금주 할머니의 증언입니다.

「악몽」

어느 날 공장에 갈 직공을 모집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만약 모집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일본인들한테 심하게 얻어맞는다는 말도 떠돌았습니다. 본가에서도 누군가 한 사람은 이에 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열아홉 살 먹은 제일 큰 딸은 일본에 있는 어느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었고, 또 저는 양녀였으므로 제가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단순히, 공장에 일하러 간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가난하고 어린 시골처녀들이었습니다. 저도 공장에 돈 벌러 간다고 생각하니 그저 기쁘기만 했습니다.

저는 깨끗한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고 갔습니다. 이때가 싱가포르가 함락되던 1942년 4월이었습니다. 함흥 역까지는 조선인이 인솔했어요. 많은 여자들이 기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그 열차는 군용열차였고, 입구에는 헌병들이 지키고 있더군요. 게다가 밖을 내다볼 수 없도록 기차 창문은 모두 검정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우리를 실은 트럭은 캄캄한 밤중이 되어서야 어느 육군부대에 도착했습니다. 나중에 그곳이 히노마루 부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들어간 곳은 양옥 안의 조그마한 방이었는데, 안에는 좁게 칸막이를 해놓았고, 모포 몇 장이 놓인 나무침대가 있었습니다. 헌병이 눈을 부라리고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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