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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정국상황과 분단을 만든 민족반역자들에 대해 서술하였습니다.

1. 해방 후 정국
1) 38선 이남지역
2) 38선 이북지역

2. 민족반역자 이승만·김일성

3. 유엔에 넘어간 한반도의 운명과 남북통일운동

4. 5.10단선과 4.3 항쟁

5. 스스로 자초한 분단과 정통성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직후 소련이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남진하자, 당황한 미군정은 소련군과 협정을 하게 된다.
가장 가까운 미군이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던 상황 속에서 미국은 한반도의 절반 이상을 포함하며, 수백 년간 정치·경제의 중심인 수도 서울과 부산·인천·군산·목포 등 중요 항구를 가질 수 있으며, 인구의 2/3을 포함할 수 있는 북위 38도선 분할안을 제출했고, 소련은 이에 동의했다. 1945년 8월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으로 분할되었다. 이는 본질적으로 분단체제의 첫 출발이었다.
전범국가인 일본이 전승국들에게 분할점령되지 않은 것에 비해 가혹한 처사였으며 임시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넘어서 실제 국경처럼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미국과 소련의 세력이 한반도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분단시키고 있을 시기에 국내외에서 건국과 관련이 있던 세력 중에 큰 세력은 6개였다. 첫째는 여운형·조만식의 건국준비위원회, 둘째는 김성수·조병옥를 비롯한 친일파계열의 한국민주당, 셋째는 김구의 대한민국임시정부, 넷째는 미국과 친한 이승만세력, 다섯째는 박헌영의 조선공산당과 다섯째는 소련의 지원을 업은 김일성세력이었다.

1) 38선 이남지역
초기에 6개의 세력들 중에 가장 큰 세력을 떨치고 있던 것은 1944년부터 국내에서 전국적 단위로 건국을 준비한 여운형의 세력이었고, 그 다음은 일제 강점기에 친일을 한 대가로 엄청난 부를 쌓은 친일파들의 당인 한국민주당이었다.
당시 독립운동세력의 상당수가 좌파계열이기에 미군정은 그 누구도 정통성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여운형의 세력은 괴뢰세력이라 인식하였고, 김구의 임시정부조차 개인자격으로 입국시켜서 남한의 타 세력과의 균형을 맞추었다.
미군정이 태도가 강경하자 친일로 부에 비해 정통성이 약한 한국민주당이 임시정부와 손을 잡았고, 남한에서의 건국준비위원회 세력은 괴멸되었으며 미군정과 친분을 유지하던 이승만세력의 힘은 강화되었다.

[hwp/pdf]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민족반역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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