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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임진왜란을 통해 본 역사 속의 동아시아

임진왜란을 통해 본 역사 속의 동아시아

1. 임진왜란을 보는 삼국의 시각

임진왜란은 분명 국제전(國際戰)이었다. 애초 일본의 침략에 의해 조선과 일본 사이의 전쟁으로 시작되었지만 곧이어 명의 참전을 불러와 조선․명과 일본 사이의 전쟁으로 변질되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군이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던 1592년 12월, 건주여진(建州女眞)의 수장 누르하치(老兒哈赤)가 조선에 원병을 파견하겠다고 제의하여 전쟁은 바야흐로 동아시아 전체의 국제전으로 비화되었다.
동일한 전장(戰場)에서 벌어진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한중일 세 나라가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 서로 다르다. 그것은 이 전쟁을 부르는 명칭의 차이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우리가 쓰는 ‘임진왜란’이란 말은(참고로 북한에서는 ‘임진조국전쟁’) ‘임진년에 왜구가 이유 없이 쳐들어와 벌인 난동’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일본에서는 ‘문록경장의 역(文祿慶長の役)’이 공식 명칭이다. 문록과 경장은 당시 일본의 연호로서 1592년부터 1614년까지를 가리킨다. ‘역’에는 ‘정벌’이란 뜻이자 동시에 ‘조선에 대한 정당한 손봐주기’ 정도의 의미가 담겨 있다. ‘무고한 침략’에 대한 반성의 기미는 애초부터 찾아 볼 수 없다. 근래에 와서야 일부 학자들이 ‘풍신수길의 조선침략’, 혹은 ‘임진왜란’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이 임진왜란을 부르는 용어와 그에 담긴 역사적 인식 또한 독특하다. 17세기 당시에는 ‘동원일역(東援一役)’, 동사(東事), ‘만력동원지역(萬曆東援之役)’ 등으로 부르다가 오늘날대륙과 대만에서는 ‘항왜원조(抗倭援朝)’라 부른다. ‘왜구에 대항해서 조선을 도운 전쟁’이란 뜻이다. ‘원조’란 어디까지나 “조선을 도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이다. 여기에는 자신들의 참전과 원조를 조선에 대한 ‘특별한 은혜’로 여기는 중국 측의 ‘생색’과 그와 맞물린 ‘시혜자(施惠者)’ 인식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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