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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제 - 창덕궁의 역사

■창덕궁의 역사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2-71]

창덕궁. 비원으로 잘 알려진 곳. 원래는 경복궁이 정궁이지만, 실제로 조선의 많은 왕들이 기거했던 곳이죠. 조선의 궁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궐이 창덕궁입니다. 현재는 관람객들은 가이드를 따라 들어가도록 되어 있죠. 도심지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는데도, 자주 찾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 합니다. 그러나 창덕궁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1. 태종(太宗)의 신궁(新宮) 영건(營建)

태조4년(1395) 9월에 새 궁궐 경복궁이 완성된 후, 얼마되지 않아 태조 7년 8월에 왕자의 난 이 일어나 세자 방석이 죽자 태조는 왕위를 정종(定宗)에게 양위한다. 그러나 정종은 개성으로 돌아가고 다음 해에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정종은 방원에게 양위하니 그가 바로 조선 3대 임금인 태종이다.
태종이 즉위하여 한양(서을)으로 재천도하게 되는데 이 무렵 이궁(離宮 ; 태자궁, 세자궁의 총칭)으로 지은 것이 창덕궁이다.
창덕궁 조성공사는 태종 4년(1404) 10월에 시작, 다음 해 10월에 일단 끝난 단기간의 공사이므로 태종은 재위중 계속하여 궁안의 문이나 누각들을 세웠으니 돈화문(敦化門)이 완성되는 태종 12년에 가서야 거의 궁궐 면모가 갖추어지게 된다.
창덕궁은 크게 인정전(仁政殿) 일곽(一廓)인 외전과 대조전(大造殿) 일곽인 내전으로 나누어 진다. 정문인 돈화문에는 큰 종을 달아 새벽과 밤늦게 쳐서 시간을 알리고 치안질서를 유지하는데 이바지 했는데, 특히 이 종은 전국 각도의 무쇠 1만5천근을 모아 만들었으며 변계량(卞季良)에게 명하여 종명을 지어 새기게 하였다.

2. 창건후 임진난(任辰亂)까지

창건후 임진난이 일어날 때가지 약180여년간 큰 재난 없이 존속되었다. 연산군 대에 이르러 무리한 공사를 벌였으나 모두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이 왕명에 반대하는 신하는 모두 처형하는 폭정을 하였는데 이 때 많은 전각들이 개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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