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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uot 아우구스티누스

◈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 - 시대를 비추며 깨운 ‘위대한 통찰’

“순결을 주소서. 절제를 주소서. 그러나 아직은 마소서.”

돈과 명예, 정욕의 사슬에 매여있던 아우구스티누스가 드렸던 이 기도는 죄에서 자유롭기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현대인의 심정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그런 아우구스티누스가 어느 정원의 무화과나무 아래서 로마서 13장 13∼14절을 읽고 회심하여 자신의 과거와 단절한 얘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 때문인지 아우구스티누스가 어떤 인물인지 질문을 던지면 대개 이렇게 대답한다.

“그는 젊었을 때 방탕한 자였으나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어린 기도로 회개해 성자가
된 사람이지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게 말하고 넘어가기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교회와 세계에 미친 영향이 너무나 크고도 심오하다.

그는 고대교회의 위대한 교부요 신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철학자요 역사가 수사학자 심리학자 교육학자였으며 정치철학자였고 저술가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당시 로마제국의 일부였던 북아프리카 누미디아 지방 다가스테(현재 알제리 동부의 수카하라스-Souk Ahras)에서 354년 11월13일 태어났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에게 자라면서 예수의 이름을 들었다. 그러나 북아프리카의 중심도시 카르타고(현 튀니스)에서 공부하던 중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라는 책을 읽으면서 철학적 순례의 길에 빠져든다. 선과 악의 문제를 탐구하다 마니교로 개종하는가 했더니 로마에서 수사학을 가르치는 동안 아카데미파라는 회의론자들의 영향으로 마니교의 이원론을 비판하게 됐다.

386년 밀라노의 수사학 교수로 보내진 그는 그곳에서 암브로시우스 감독의 설교를 들으며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을 이해하게 됐다. 당시 밀라노에 유행했던 신플라톤주의도 영적인 존재가 있음을 납득케 하는 역할을 했다. 그 해 초여름 그는 회심의 사건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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