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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화 - 프랑스대혁명

프랑스대혁명

같은 계급의 사람들끼리 굳게 단결하고 있었으므로 제 3계급인 부르주아들을 계속 억누르고 자기네들만 권세를 누리려던 귀족 계급과 크게 부딪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들의 충돌이 불러일으킨 것이 바로 프랑스대혁명이다.
사식 귀족과 성직자들이 백성들의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1780년경, 프랑스의 인구가 2500만 명 이였는데 제 1계급인 성직자, 제2계급인 귀족은 전체 인구의 1% 정도인 27만 명으로 나라의 중요한 자리나 기관은 이들이 모조리 독차지 했을 뿐더러 전체 인구의 1%인 이들이 가진 땅은 프랑스 전체 국토의 40%나 되었으며, 이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라 하여 나라에 세근조차 안 낼 권리를 갖고 있었다.
권세와 부귀를 독차지한 이들은 가난한 백성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시차와 낭비를 거듭하다 보니 물가는 계속 오르고, 나라 살림은 엉망인데다가 흉년이 계속되어 민심이 극도로
흉흉한 판에 미국에서 독립 전쟁이 터졌다.
독립전쟁은 미국 시민들이 영국의 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인 것인데, 영국과 프랑스는 수백 년 동안 개와 고양이처럼 늘 으르렁거리던 사이라 프랑스는 엉망진창인 나라 살림은 생각하지 않고, 눈엣가시 같은 얄미운 영국을 골탕 먹이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미국 독립전쟁에 뛰어들어 군대와 무기를 무제한으로 쏟아 넣게 되었다.
라파에트 장군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의 도움으로 미국은 독립전쟁에서 이겨 영국을 몰아내고 독립 국가가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 전쟁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은 프랑스의 나라 살림은 당장 망할 형편에 이르게 되었다.
뒤늦게야 국왕 루이 16세는 기울어가는 나라 형편을 이르게 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해 보지만 계속되는 흉년에 워낙 기울어진 살림이라 뾰족한 수가 없고 그야말로 큰 수술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네케르라는 재무장관은 왕의 허락을 받아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 1계급 성직자, 제2계급 귀족, 그리고 제3계급 평민 대표로 이루는 1789년 5월 1일 3부 회의 를 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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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p/pdf]프랑스 문화 - 프랑스대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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