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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

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

경주 남산(南山)은 불교설화 탄생의 무대다.화려하고 장엄한 남산의 위용은 산의 높이나 크기 때문이 아니다.높이로 볼 때는 해발 500m가 못되는 산이며,크기도 한국의 이름난 산들에 비하면 작은 편에 속한다.그리하여 신라시대 제향하던 32명산 중에도 들지 못했던 것 같다.그런데도 남산은 신라 귀족의 발생지이자 신라의 건국과 관련된 성역(聖域)으로서 7세기 중엽 무렵부터 산간불교(山間佛敎)가 크게 번창했을 때 신라를 상징하는 불교미술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던 곳이다.

남산에는 지금 106군데의 사지(寺址),61기의 석탑,78체의 석불이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용장사지(茸長寺址)에는 3층석탑 한 점과 삼륜대여래좌상 한 점이 전해지고 있다.이곳 용장사지는 경주 남산에서 발생한 수많은 전설과 역사적 사건 중에서도 가장 흥미진진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다.그러나 이 사건의 내용은 우리의 관심 밖에서 까맣게 잊혀 왔다.오늘 필자는 문제의 그 사건 속으로 여행하기 위하여 경주 남산을 오른다.

●3층석탑 주변 솔숲 산불도 비켜가

사건의 주인공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김시습은 1460년에서 1470년에 이르는 10여년 동안을 용장사에서 살았었다.그가 이곳에 살면서 남긴 유명한 작품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였다.그의 나이 30세를 전후한 시기였다.

경주 남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위하여 처음 이 산을 올랐던 1986년 겨울과 1987년 봄철에 보았던 금오산(金鰲山) 정상,동서남북으로 뻗어내린 능선 위 울창하던 솔 숲은 몇년전 산불로 잿더미가 되어버렸다.을씨년스러운 상수리나무 몇 가지와 막 꽃이 지고 있는 철쭉 서너 포기가 너무나 늦게 찾아온 나그네 앞에서 울음을 참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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