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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참전 조선장수

곽재우 (郭再祐 1552 ~ 1617, 본관 현풍)

곽재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때 붉은 옷을 입고 선두에서 수없이 일본군을 무찔렀으므로 홍의장군 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일본군을 피하여 달아났던 관찰사 김수와의 불화로 누명을 쓰고 구금되었다가 초유사 김성일의 장계로 석방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1592년 6월 말 안고구지 에게이가 지휘하는 일본군과 정암진에서 싸워 이겼다.
그후 함경도 관찰사를 지냈는데, 당파싸움으로 나라의 형편이 어지러워질 뿐만아니라 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죄없이 체포되었고, 또 절친한 광주의병장 김덕령 장군이 억울학게 옥사한 것을 통탄하여 벼슬을 사퇴하였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1597년 7월 말 창녕 화왕산성을 곽재우가 수비하고 있었는데, 일본군 우군의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가 지휘하는 일본군이 공격하려고 산기슭에서 바라보다 공격을 포기하고 초계, 합천을 지나 황석산성으로 진격하였다.

찰리사와 절도사를 지냈고, 광해군때는 영남 절도사와 수군통제사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했다. 그러나 시기하는 무리들의 모함을 받아 귀양살이를 하기도 했다. 세상을 떠난 뒤 병조판서 겸 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 호는 망우당, 시호는 충익, 황해도 관찰사 월의 아들, 조식의 외손서.

권율(權慄 1537 ~ 1599)

권율은 좌의정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도 광주목사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천 여명의 의병을 모집여 금산군과 완주군의 경계인 이치에서 고바야가와 다가가게가 지휘하나는 일본군 제 6군 15,000명을 격퇴하여 일본군의 전라도 점령을 단념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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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p/pdf]임진왜란 참전 조선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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