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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한국지배와 친일파


일제의 한국지배와 친일파
: 일제의 한국지배의 특수성 경찰 집단을 중심으로

일제의 조선통치는 크게 세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3‧1운동 무렵까지의 헌병경찰시대로 이때는 군이 조선통치의 주역이었다. 다음은 중일전쟁 무렵까지의 보통경찰시대로 대체로 경찰이 그 주역을 담당하였다. 마지막이 패전까지의 시기로 전시특별법에 의한 무차별적인 탄압이 자행된 시기이다.

(A)무단통치시기 헌병경찰시대
1910년 한일병합이 이루어진 후 일제의 조선강점 정책은 식민지배의 상부구조로서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식민지 국가기구를 설치하였다. 일제는 조선 민중의 반일저항을 진압하고 미숙한 일본 자본주의의 자본축적 기반을 강권적으로 만들기 위해 한반도 정책에 있어 ‘한국인의 배제와 군사적 무단통치’를 일관하게 된다.
이러한 지배방침에 따라 일제의 식민지배 기구는 총독을 정점으로 중앙‧지방 관료행정기구, 군대, 헌병경찰기구, 사법기구 등과 같은 물리적 억압기구들에 주로 집중되었다. 이 지배기구에서 총독은 입법, 사법, 행정 및 군대 등에 모든 권한을 갖는 전횡적인 무단통치의 총수였다. 이때 행정기구의 물리적 수단으로 주요하게 운영되던 것이 바로 헌병경찰제로서 조선 총독정치의 핵심적 억압기구였다.
원래 주차헌병은 의병투쟁이 한껏 고양되었던 1907년에 고문경찰제를 폐지하고 통감부경찰관도 폐관하여 한일 경찰을 일원화시킨 후 통감에 예속되어 전국의 경찰직무를 장악하게 된 것으로, 병합 직전인 1910년 6월29일 통감부경찰관서 관제에 의해서 헌병조직이 경찰조직과 통합됨으로써 헌병경찰조직은 제도화되었다. 이 제도는 총독부시기에 계승되어 헌병과 경찰의 두 조직체계가 연립하고 헌병이 최고 치안책임자로서 두 조직의 장을 겸하여 일원적인 명령계통을 이루고 있었으며, 그 운영에 있어서 경찰은 개항지 및 철도연선을 비롯하여 주로 질서를 요하는 도시에 배치되어 행정 및 사법경찰을 주관하고, 헌병은 군사경찰상 필요한 지역, 국경지방, 의병이 출몰하는 지방에 배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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