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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빗물 이용의 역사와 문화

우리나라 빗물이용의 역사와 문화

I. 한국사회의 ‘비’관련 문화전통

한국 전통사회에서 비와 관련된 문화는 농업생산(農業生産)과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다. 전근대사회의 유일한 생업경제인 농경에 물은 필수적인 것이고 이 물의 원천이 비를 통해 이뤄진다는 사실은 ‘비’라는 존재를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신(神)에 의해 주관되는 것으로 이해하여 다양한 형태의 전통문화가 형성되었다.
비와 관련된 우리 역사상 최초의 기록은 단군신화(檀君神話)부터 나타나고 있다. 즉, 환웅(桓雄)이 태백산 신단수(神檀樹)아래에 신시(神市)를 설치하고 하늘에서 내려올 때 대동한 존재가 바로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 등으로서 이들 모두 비를 내리는 존재들이었다.
또한 삼국을 건국한 시조설화에서도 비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고구려(高句麗)의 시조(始祖) 주몽(朱蒙)은 고구려 건국시 경쟁국인 비류국의 송양왕을 물리치기 위해 하얀 사슴(白鹿)을 거꾸로 매달고 매질하며 하늘에 비를 빌어 큰 비를 내리게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송양왕의 도읍이 홍수로 잠겨 결국 주몽에게 항복하는 신화적 사건이 「동명왕편」에 전하고 있다. 이는 비를 기원하는 전형적인 주술사적 존재인 사제왕(司祭王, Priest-King)으로 주몽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대표적 사건이 비를 기원하는 것이었다. 또 주몽의 어머니는 ‘물의 신’인 하백(河伯)의 딸로서 물과 관련된 문화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편, 부여왕은 한해의 풍흉 즉, 비의 풍족함 여부에 따라 왕위를 물러나기도 하였고 신라(新羅)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부인은 알영정(閼英井)이란 우물에서 용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나 이들 고대왕권이 물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같이 우리역사의 개국시조인 단군을 비롯하여 삼국시대 왕들은 대부분 물과 관련된 사제적 존재였으며 이는 바로 농경사회의 최고 지배자가 물을 관장하는 신의 대행자이거나 이를 기원하는 대표자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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