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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

1.개화 사상의 형성과 발전
조선 후기 이래로 조선 봉건 사회는 나라 안팎으로 커다란 사회 변동의 물결에 휩싸여 왔다. 안으로는 봉건 체제의 낡은 틀을 깨뜨리고 자본주의의 근대 사회로 나아가려는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가 일고 있었고, 밖으로는 무력을 앞세워 통상을 요구하는 구미 자본주의 열강의 침략 위협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조선 사회 안의 일각에서는 나라 안의 사회 경제적 모순을 자각하고 세계 역사 발전의 방향에 따라서 사회를 이끌려는 사상적 흐름으로서 개화 사상과, 이 사상을 현실 정치에 실현하려는 정치 세력으로서 개화파가 등장하였다.
조선 후기 실학파의 한 흐름인 북학파의 거두였던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가, 자신이 직접 체득한 실학적 학풍에다 청을 오가면서 경험한 중국 견문을 덧붙여 개화 사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1861년과 1872년 두 차례 북경에 가서 자본주의 열강의 무력에 굴복하여 굴욕적인 천진. 북경 조약을 체결하여 자본주의 열강의 각축장이 된 청의 현실을 목격하였고, 1862년 안핵사로서 진주민란을, 1866년 평안도 감사 시절, 제너럴 셔먼호 사건 등을 직접 겪으면서, 문호 개방을 통한 부국 강병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었다. 그리하여 그는 압도적으로 우세한 열강의 군사력에 대항하려면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나라의 문호를 개방하여 서양의 기기(대포, 화륜선 등)를 채용하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1876년 박규수는 일본의 문호 개방 요구에 자주적으로 개국할 것을 주장하였지만, 민씨 정권을 둘러싸고 있던 봉건 관료들에 의해 거부되었다. 이 이을 계기로 박규수는 우의정이 된 지 1년도 채 못되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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