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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 1910.20년대 안동의 사회와 항일투쟁

1910․20년대 안동의 사회와 항일투쟁
1. 일제 식민통치와 안동사회
1) 일제강점과 1910․20년대의 식민통치
(1) 1910년대 일제의 식민지배체제와 통치이념
일제는 의병항쟁과 같은 한국인들의 저항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식민지로 만든 결과 헌병에 의해 전 국토를 감시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억압적인 정책으로 일관하였다. 때문에 흔히 1910년대의 식민통치를 ‘무단통치’로 부르기도 한다. 이 시기는 특히 조선총독부를 움직이는 총독 이하 대부분의 주체들이 일본의 육군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 폭력성과 야만성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또한 만주로 진출하여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을 전략적인 거점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 내의 안정, 특히 민족적 저항을 억압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일제는 표면적으로는 근대적인 문물제도를 도입한다고 선전하였지만, 실제적으로는 언론․출판․집회․결사 등 한국인들의 기본권을 완전히 부정하였다. 1910년 ‘집회 단속에 관한 건’을 제정하고, 신문지법․출판법을 확대 적용하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거의 모든 단체를 해산시키고, 신문과 잡지 등 출판물을 강제 폐간 시켰다. 대신 대한매일신보를 강제로 장악하여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로 만들어 어용 신문으로 발간하였다.
식민지 교육은 일제 식민지통치의 근본을 이루고 있었던 동화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1911년 ‘제1차 조선교육령’을 공포하면서 내세운 ‘충량(忠良)한 국민을 육성한다’는 일제의 목표는 식민지 통치기간 동안 변함없이 강화되어 갔다. 그 구체적인 기반 조성을 위해 1911년 ‘사립학교규칙’을 공포하여 반일적인 성향을 가진 한국인 경영의 사립학교를 폐쇄시키는 한편, 공립학교 등 식민지 교육기관을 확충하여 한국인들에 대해서는 식민지 통치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지식과 기술만을 교육하였다. 또 1918년에는 ‘서당규칙’을 만들어 민족교육의 온상이었던 서당의 설립과 운영도 통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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