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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대/전근대한일관계사/4학년/중간과제물]경복궁(景福宮)에서 애증의 한일사(韓日史)를 읽다

-목차-
01. 근정문(勤政門)
02. 근정전(勤政殿)
03. 경회루(慶會樓)
04. 사정전(思政殿)
05. 강녕전(康寧殿)
06. 함화당(咸和堂)
07. 집경당(集慶堂)
08. 장안당(長安堂)
09. 곤녕합(坤寧閤)
10. 집옥재(集玉齋)
11. 영추문(迎秋門)
경복궁에서 한일 역사여행을 마치며

경복궁(景福宮)에서 애증의 한일사(韓日史)를 읽다

서울 개포동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전역 후 2002년부터 경기도 분당에서 살기 시작한지 벌써 십수년이 흘렀다. 가급적 분당을 중심으로 경기도에서 일본, 왜구, 왜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지역 특성상 5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한일사의 주제를 탐색하던 중 최종적으로 경복궁(景福宮)을 선택했다.

경복궁(景福宮)은 한국의 정전(正殿)으로 조선의 중요한 사건 대부분이 논의되거나, 발생한 곳이다. 국내의 사안 외에도 국제적인 사안 또한 경복궁에서 치러졌다. 중국, 일본, 유구국 등 해외의 사신, 사절, 외교관을 국왕이 직접 접견하고, 연회를 베풀고 선물을 주고 받는 장소 또한 경복궁(景福宮)이였다.

그런데, 한국데이터베이스의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다보니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조선의 정전인 근정전(勤政殿)에서 사신을 접견하고, 경회루(慶會樓)에서 연회를 베푸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나, 그에 못지 않게 사정전(思政殿)에서 사신을 맞이한 경우도 적지 않았으며, 근정전(勤政殿) 또한 활용된 기록이 있다.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는 근정전(勤政殿)이나 경회루(慶會樓)가 아니라, 사정전(思政殿), 집경당(集慶堂), 강녕전(康寧殿), 집옥재(集玉齋), 함화당(咸和堂) 등 중심부가 아닌 ‘뒷켠’에서 외교관을 접견한다. 단순한 ‘장소의 변경’이 아니라, 조선이 국력이 스러져 갔음을 ‘접견 장소의 변경’에서 여실히 느꼈다면 과장일까. 조선의 왕이, 자신의 안방에서조차 권위를 내세울 수 없었던 당시의 시대상이 고종실록에 여실히 담겨 있다.

일제의 야욕은 멈추지 않았다. 일본 병사들이 영추문(迎秋門)을 통해 경복궁을 ‘침략’한 것은 시작일 뿐, 그 다음해 일본군은 경복궁(景福宮) 곤녕합(坤寧閤)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한다. 일국의 왕비를 병사들의 총칼로 시해하는 사건은 세계사에서 찾아 보기 어려운 만행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의 국력이 성대할 때 외국의 사신은 근정전(勤政殿)의 높다란 처마를 올려다보며 왕을 배알하고, 용이 춤을 추는 경회루(慶會樓) 2층에서 연회를 즐겼다. 일제강점기에는 더 이상 경복궁의 중앙을 차지할 수 없었기에, 강녕전(康寧殿), 집옥재(集玉齋), 장안당(長安堂) 등 뒷켠으로 밀려나와 사신을 맞이했다.

그리고... 더 이상 경복궁(景福宮)조차 지킬 수 없었기에 영추문(迎秋門)과 곤녕합(坤寧閤)에서 조선왕가의 피를 흘려야만 했다. 한국과 일본, 질기디 질긴 ‘애증(愛憎)의 관계사’를 경복궁에서 다시 한번 반추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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